생활수필 - "다양한 직업을 마주하는 법 '검사 편(?)'
생활수필 - "다양한 직업을 마주하는 법 '검사 편(?)'
  • 김하형
  • 승인 2022.09.02 14: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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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친애하는 나의 민원인_정명원 저’

문장 하나하나 피식피식 웃음이 나왔다. 
스스로의 표현에 따르면 ‘외곽주의자’ 검사가 바라본 진실 너머의 풍경들이라는 부제가 붙은 공판 에피소드를 묶은 책이었다. 
무서운 법복을 입고 피의자를 몰아치는 모습과는 전혀 어울리지 않은 부류의 검사. 사건에 깊이 공감하다 못해 빠져드는 매우 인간적인 마음을 가지고 공판을 마주하는 지극히 평범한 회사원이었다. 직장생활을 성실하게 하는 검사, 특권의식도 엘리트 의식도 내려놓고 저마다의 사연을 가진 민원을 다정하게 처리해주고 이를 위트 넘치게 표현해내는 삶도 검사의 삶이었구나. 꼭 무엇의 중심에 다가서지 않아도 자신만의 외곽에 형태를 갖춘다면 누군가에게 쉽게 흔들리지 않는 자유로운 삶이 되는구나. 
대부분의 책이 주는 장점이겠지만 다양한 삶에 대한 체험판이랄까?
검사도 의사도, 헤어디자이너도, 얼마 전 접한 오디오북 속의 ‘한자와 나오키’에 나오는 대출 담당 금융인까지.. 
모든 길을 다 가볼 순 없지만 우린 책 속에서 마주한 이들의 삶에 대한 이해의 폭을 넓혀간다. 그들의 깊이 있는 삶에 존경을 표하며. 

 

- 뜨겁고 물컹한 삶의 결들을 헤집는 검사

책의 앞장을 막 넘기면 본인에 대한 소개 글이 나온다. 
“정명원_2006년부터 지금까지 16년째 검사로 일하고 있다. 대구에 살고, 대구 인근 지역 근무를 줄기차게 희망한 결과 ‘신라 검사’라고 불린다. 줄곧 형사부에서 금융 조세 환경 식품 소년 등 다양한 분야의 전담을 아우르며 ‘통상 업무를 안정적으로 수행하나 특출한 실적 없음’ 검사로 일하던 중 우연한 기회에 자신 안에 있는 이야기꾼으로서의 재능을 발견하고 국민참여재판 전문 검사로 활약하고 있다. 특수부, 공안부만이 중심인 것처럼 보이는 대한민국 검찰에서 행복한 형사부, 공판부 검사를 꿈꾸며 지금도 2006년식 법복을 걸치고 법정에 나간다. 
어디든 조금 외곽에 머무는 것을 좋아한다. 뜨겁고 물컹한 삶의 결들을 헤집으며 명조체의 공소장을 쓰면서도, 공소장 너머의 풍경들과 함께 기꺼이 일렁이는 자가 되고자 한다. 버거운 법률 노동자로서의 삶을 16년 동안이나 무사히 밀고 온 것은, 거악 척결이니 사회 정의 구현 같은 거대한 무엇이 아니라, 친애하는 민원인들이 건네는 복장 터지게 다정한 민원이었음을 이제 어렴풋이 알 것도 같다고 말한다.”
장황하게 작가의 소개 글을 되짚는 이유는 감동해서다. 
이런 검사도 있구나! 가뜩이나 요즘 티브이에서 검사 대통령과 검찰 공화국 시대를 살아가고 있는 요즘 딱 이런 민원인의 삶에 푹 파묻혀서, 뜨겁고 물컹한 삶의 결들을 헤집는 검사가 있다는 게 고맙고 또 고맙더란. 
전문 작가가 아닌 검사의 삶, 직장인의 삶 속에서 한 문장 한 문장 연필을 꾹꾹 누르듯 써 내려간 저 문체도 초보 작가의 번뇌가 느껴져 더 인간적이라고 해야 하나?
여튼 사랑스러운 글이었다. 

친애하는 나의 민원인 / 정명원 지음 / 한겨레출판

 

- ‘법복’ 에피소드 
검사의 법복은 임관시에 법무부에서 한 벌씩 준다고 한다. 
저자는 검찰에 지원했을 당시 성적이 아슬아슬 커트라인에 걸려있었고 초조하게 발표를 기다리고 있었다. 그때 낯선 전화 한 통. “검사 법복 만드는 00 사이데요, 사이즈 어떻게 하면 될까요?” “법복이요? 그럼 저 .. 합격한 건가요?""그건 모르겠고, 우리는 그냥 명단 받아서...” 끊기는 전화기에 대고 감사합니다를 외치는 상황. 
검사합격을 극적으로 알게 된 그 순간의 기쁨이 법복에 대입되며 평균 이상의 애정을 품게 됐다는 웃지 못할 저자 본인의 상황에 이어. 임신한 공판 검사가 만삭이 될 때까지 아무도 알아차리지 못하는 경우도 있었으며, 드레스 코드가 법무부령으로 정해지는 치밀함까지 법복에도 여러 가지 사연이 있었다. 
어느 날 저자는 의외의 고급 소재인 쿨울로 만들어진 법복을 세탁소에 가져가 드라이크리닝을 맡겼다. 옷을 이러저리 살펴보던 세탁소 사장님 왈 “근데 이건 어디 성가대 옷이에요?” 했다는 대목에서는 웃음을 참을 순 없었다. 
또 판사, 검사, 의사인 여자 셋이 모여 수다를 떨다가 “법복이 한 벌 뿐이면 어떻게 빨아 입냐?”는 의사의 말에 당황한 검사와 판사가 “우리 옷은 검정색이잖아. 앉아만 있고”라며 머쓱하는 모습이라니.

 

 

-‘낭만’ 에피소드
정갈한 손글씨 탄원서와 낭만적인 내용에 순간 냉철함을 던져버린 검사가 다행히 정신을 수습한 이야기라고 해야 할까?
“다섯 살 손녀를 맡길 곳이 없어 손녀의 손을 잡고 검찰청을 방문하였는데... 부디 읽어주시기를 바랍니다” 
일흔을 막 넘긴 남성 피의자가 재개발 단지에서 뭔가를 훔쳐 야간주거침입 절도죄에 얽힌 사건이었다. 문제는 남자의 탄원서가 술술 읽히는 정갈한 글씨와 더불어 자신의 젊은 시절 이야기에서 시작해 “첫사랑을 만났던 00동에서 노을이 아주 붉게 타는 그런 날이었습니다”라고 시작한 표현을 마주하며 관용 같은 걸 베풀고 싶은 마음이 됐다는 것.  빈 집들의 보일러를 발견하고 홀린 듯 보일러를 뜯어 낡은 차에 싣고 딸아이에게 용돈이나 받는 궁색한 처지에 조금이라도 도움이 될 수 있으리라는 생각에 눈이 멀었다는 남자의 애절한 탄원서.
그러나 그 남자가 뜯어낸 보일러는 모두 6대 (좀 많다), 심지어 사람이 살고 있는 집에서도 보일러를 뜯어왔다가 다음날 다시 보일러를 달아놓으려는(알 수 없는) 의도로 현장을 찾았다가 검거됐다. 
탄원서를 다 읽은 뒤 최대한의 선처를 마음먹은 검사에게 범죄 경력 조회 결과는 낭만을 깨기 충분했다. 소년부 송치 경력이 줄줄이 있는 것은 이해할 수 있었다. 하지만 다양한 젊은 날의 범죄경력과 더불어 불과 얼마 전 정비소에 맡겨둔 자동차 여러 대에서 배터리를 떼어간 것까지 낭만과는 거리가 먼 절도 행위들. 
그 남자를 기소해 넘긴 뒤 동료들은 그 스토리가 뻥이라는 의견이었지만 저자는 황량한 재건축 예정지에 내려앉은 붉은 노을은 그대로 남겨두고, 마음 속 깊은 곳에 잠들어있던 낭만 세포를 오랜만에 깨운 그 남자가 남의 물건을 함부로 가져가는 기술 말고 그 뛰어난 묘사력으로 글을 써보는 것도 좋겠다는 의견으로 마무리 지었다. 


- 외곽주의 자유를 꿈꾸는 검사
‘이제 나에게 주어지는 권한과 지위를 나의 자유를 확대하는 것에 써야겠다.’
1. (하고 싶은 말을 다 할 수는 없지만) 하기 싫은 말은 하지 않는다. 
2. (웃긴다고 해서 그때마다 웃을 수는 없지만) 웃기지 않은 말에는 웃지 않는다.

외곽주의자 임을 주장하는 저자는 
전통적으로 검찰의 중심은 특수부나 공안부가 속해 있는 소위 인지부서였지만 세상이 설정한 표준 사이즈가 뭣이든 간 사람들은 각자 자기만의 굽 높이 같은 것을 가지고 있다고 말한다. 
남들이 하는 대로 맞추다 보면 어느 순간 절뚝거리며 걷게 된다는 것.
“내가 무엇을 잘하고 못하는지, 무엇에 보람을 느끼거나 느끼지 않는지, 무엇이 나를 움직이게 하는지를 아주 구체적으로 하나씩 따져보았다.
그런 과정을 통해 나의 외곽은 마침내 스스로 형태를 갖추었다. 스스로 형태를 갖춘 외곽이 있는 한, 많은 사람들이 어디를 중심이라고 하든, 그건 더 이상 중요하지 않다.”
“진격의 질서를 거부하는 이들에 대해 루저라고 부르고 이해하기 어렵고 거슬리는 존재일수록 최대한 획일적이고 단순한 이름을 붙여 더 이상의 의미 부여를 제거하는 것, 이 또한 이 사회가 진격의 질서를 유지하는 하나의 방식이었다”
격하게 공감하는 부분이었다. 중심이라 생각하는 이들이 진격의 질서를 유지하는 방식에 놀아나지 않는 것이 내가 좀 덜 불편하고 덜 흔들리는 일임을. 

- 위로받는 사람들의 국숫집
저자의 소박한 꿈은 ‘위로받는 사람들의 국숫집’을 차리는 것이라고 했다. 
기운 없고 쉽게 지치는 사람들을 위해 후루룩 간단히 먹을 수 있는 국수 한 그릇을 내어놓는 작은 가게. 싸고도 간결한 위로 한 그릇을 모르는 사람들과 나눌 수 있는 사람이 되고 싶다는 생각. 
스스로처럼 조급증과 불안증을 달고 사는 현대인들에게 어깨를 토닥인다. 
나도 “인생의 많은 문제들로부터 담대하면서도 그 안에 숨은 작은 기쁨들과 대자연의 아름다움을 놓치지 않는 사람”이 되고 싶다. 
 


글.  김하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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