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악칼럼 - 피아노 레슨이란 무엇일까
음악칼럼 - 피아노 레슨이란 무엇일까
  • 신은경
  • 승인 2022.09.02 14:41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처음 학생을 받았던 때가 생각난다. 나도 많이 배워야 하는 입장이었고 음악적으로 완전치 못한데 무슨 자격으로 학생을 가르칠 수 있을지 고민이 깊던 대학 초년생이었다. 그때도 완벽주의 성향을 띠고 있어서 어떤 일도 쉽게 벌이지 못했다. 하지만 학생이 피아노 치는 걸 보니, 내가 전해줄 수 있는 것들이 있었다. 그제서야 안심하고 나는 학생을 가르치기 시작했다. 

<피아노를 치는 소녀들 르누아르> 

대학 시절, 나의 꼬맹이 제자들은 취미로 배우는 학생들이었다. 나는 이 귀여운 학생들이 음악의 즐거움을 알고 즐기기를 바랬다. 어린 학생들에게 테크닉적으로 작은 손을 쓰는 법을 가르치는 데도 많은 시간이 걸렸지만, 특히 어려운 점은 음악에 대한 기쁨을 전하는 것이었다. 나는 아이들이 좋아하는 뉴에이지 곡이나 소곡집은 잘 다루지 않았다. 어느 정도 실력이 키워지면 혼자서도 얼마든지 할 수 있는 곡들을 굳이 선생이 잡고 가르치는 건 시간 낭비로 보였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거기에 레슨 시간을 쓰기보다는 정통 클래식 곡들에 더 많은 시간을 썼다. 그러다 보니 학생들에겐 곡이 어렵고 이해가 되지 않거나 지루하기 십상이었다. 

그래서 고안해낸 것이 “스토리텔링 피아노”였다. 곡의 분위기에 따라 새가 지저귀고 빗방울이 떨어지고 터덜터덜 걸어가는 모습 등을 심상화하면서 치도록 했다. 그랬더니 학생들이 곡의 분위기 그대로 받아들였고, 음악적으로도 자연스럽게 표현할 수 있었다. 학생들은 무채색으로 느껴지던 곡에 색을 하나씩 입혀 자기만의 음악에 대한 상을 갖게 되면서 음악의 기쁨에 가까이 다가갔다.

레슨을 꾸준히 하다 보니 전공생들이나 부전공생들이 오기 시작했다. 이들은 중학생, 고등학생, 대학생으로 초등생보다 말도 잘 알아듣고 무엇보다 본인이 피아노를 배우겠다는 의지로 온 학생들이었다. 대체로 테크닉 기본을 다시 잡아야 했지만, 내게는 음악을 가르치는 열정이 솟아나게 하는 학생들이었다.

베토벤, 쇼팽 등의 좋은 텍스트는 우리의 레슨 시간을 풍요롭게 해주었다. 대가들 영혼의 엑기스를 종이에 암호화해 놓은 것이 악보 아닌가. 대가들의 악보를 들여다볼수록 우리는 새로운 것을 발견할 수 있었다. 그래서 악보는 종이 악보로서만 끝나지 않았다. 시공간을 초월해서 피아노라는 악기를 통해, 그리고 학생의 손가락을 통해 그 대가들과 접속하는 시간이 레슨 시간이었다. 

그런데!!! 이렇게 좋은 텍스트를 갖고 열정적으로 가르쳐도 흥미를 못 붙이거나, 시간이 흘러도 실력이 제자리인 학생들이 있었다. 그 학생들은 피아노를 잘 치고 싶어서 왔지만, 잘 치고 싶은 욕구만큼 연습을 거의 하지 않았다. 가르치는 실력의 부족함과 학생들에게 음악에 대한 열정을 불러일으키지 못했다는 생각에 스스로 자신감을 잃고 위축이 되기도 했다. 

학생들에게 왜 이런 현상이 벌어질까?? 그들을 세밀하게 관찰하고 어떻게 해야 할지 생각을 거듭했다. 
척추를 펴고 피아노 의자에 앉도록 해도 잠시 후엔 금세 구부정하게 허리를 굽히곤 했다. 그러면 나의 손과 눈은 학생의 손과 허리를 잡아주느라 분주해진다. 그 학생들은 의자에 앉아 있긴 했지만, 정신은 누워있었다. 매사에 의욕이 없었다. 대학은 가야겠으나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모른 채 부모님 손에 이끌려 온 학생, 가족 내의 갈등이 커서 내적 억눌림으로 표현이 두려운 학생, 너무 허용적인 환경에서 자라 자기 멋대로만 치고 싶은 학생, 늘 스스로에 대한 의심으로 자신감이 없어 건반을 누르는 것조차 무서워하는 학생 등등. 

음악에는 치유의 힘이 있다. 하지만, 이 학생들은 그 음악을 맛보기도 전에 고꾸라져서 일어나질 않는다. 피아노를 잘 치도록 하기 위해선 손가락보다 마음 훈련이 우선시되는 학생들이었다. 난 그들이 음악으로 다가갈 내적 힘을 키워줘야 했고, 음악의 끄트머리라도 가닿을 수 있는 다리 역할을 하고 싶었다. 그래서 때때로 레슨 시간보다 대화시간이 더 길기도 했고, 어느 날은 아예 대화만 하고 보내기도 했다. 그 학생들에게 중요한 건 피아노를 치는 것이 아니었다. 그들에게 필요한 건 자신에 대한 수용과 지지였다. 그리고 자기 스스로가 얼마나 멋지고 빛나는 존재인지 알게 해주는 것이었다. 피아노를 못 쳐도 상관없었다. 그보다 그 존재 자체가 귀하고 아름다움을 알았으면 했다. 정신적으로 누워있던 학생들이 서서히 앉게 되었다. 그러면 함께 기뻐하고 그 순간 한 음 한 음에 집중해서 소리의 파동을 느끼게 했다. 그리고 이렇게 몸을 릴랙스하고 내는 소리가 자신이 가진 영혼의 소리임을 그들에게 일깨워 주었다. 그리고 학생들의 강점을 더욱 얘기해주었다. 아이들은 마음을 열고 자신을 믿기 시작했다. 앉아 있던 학생들이 서고 걷기 시작했다. 피아노 실력이 좋아지는 건 물론이었고, 스스로 연습하기 시작했다. 본인들의 소리에 귀를 기울이고, 자신이 할 수 있음을 느꼈기 때문이었다. 

몇 년 전, [위플래쉬]라는 음악영화를 봤다. 선생이 욕설과 폭행을 가하며 학생의 드럼 실력을 끌어올리는 영화였다. 베토벤 아버지도 베토벤을 가둬놓고 연습을 시켰다고 하니, 전혀 근거 없는 이야기는 아니다. 하지만 음악은 몸이 릴랙스되었을 때 아름다운 소리가 나오는 것인데, 화를 내고 혼내서 근육을 긴장시켜 얼마나 발전할 수 있을까. 그리고 무엇보다도 그렇게까지 음악을 해야 하는 것인가 하는 의문이 들었다. 사람 위에 음악이 있는 것이 아니라 음악 위에 사람이 있다고 생각하기에, 그 영화가 내겐 아주 불쾌했다.

내게 음악 티칭이란 그 사람의 잠재력을 알아봐 주고, 그 사람의 귀가 되어주는 것이다. 그럴듯한 핑크빛 이야기를 할 재주도, 카리스마로 마구 이끌어갈 재주도 내겐 없다. 그들 음악인으로서의 빛을 알아보고 그들의 그릇을 충분히 채우고 넓힐 수 있도록 늘 노력할 뿐이다. 음악인으로 진정한 헬퍼가 되고 싶다. 내가 그 부분에서 성공했다면 음악과 연결되는 것뿐 아니라, 사람 대 사람으로 연결을 기억하고 실천했기 때문일 것이다. 그렇게 지나온 흔적들을 이어보니, 우리 안의 아름다움을 만나 그것을 음악으로 표현하는 것이 나의 피아노 레슨이자 나아가 음악교육이 되었다. 지금도 앞으로도 나를 만나는 학생들이 자신의 잠재력을 만나고 아름다운 음악을 만나게 되길 소망한다.

 


 

 

신은경

스토리텔링 피아니스트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 서울시 서초구 방배로 123 미용회관 5층
  • 대표전화 : 02-585-3351~3
  • 팩스 : 02-588-5012, 525-1637
  • 명칭 : 대한미용사회중앙회
  • 제호 : BeautyM (미용회보)
  • 대한미용사회중앙회 모든 콘텐츠(영상,기사, 사진)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은바, 무단 전재와 복사, 배포 등을 금합니다.
  • Copyright © 2024 대한미용사회중앙회. All rights reserved.
ND소프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