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악칼럼 = 나의 사랑, 슈만
음악칼럼 = 나의 사랑, 슈만
  • 신은경
  • 승인 2023.07.26 14: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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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귀에 닿는 한 음, 한 음이 곧장 내 가슴으로 스며들어 촉촉하게 퍼진다.
슈만의 많은 피아노 작품들은 마치 피아노로 쓰여진 시와 같다. 군더더기 없는 그의 아름다운 음악을 나는 무척 좋아한다. 슈만의 곡들은 왜 시적으로 느껴질까?

▲ 슈만
▲ 슈만

슈만의 아버지는 출판사와 서점을 운영하고 있었기에 어린 슈만은 책과 늘 가까웠고, 아버지가 출판하는 책에 슈만의 시를 실을 정도로 슈만은 문학에 심취해 있었다. 그리고 슈만은 문학과 더불어 어려서부터 피아노와 작곡에도 뛰어난 재능을 보였다. 슈만은 음악을 하고 싶어 했지만, 아버지가 일찍 세상을 뜨면서 어머니는 슈만에게 경제적 안정을 원했다. 그래서 슈만은 어머니의 뜻을 따라 라이프치히대학 법학과에 입학했다. 하지만, 대학에 입학한 지 며칠 안 되어 음악에 대한 열정으로 음악선생 비크를 찾아가 피아노와 작곡을 배웠다. 비크는 3년 이내에 슈만을 모셸레스나 훔멜을 능가하는 피아니스트로 만들겠다고 슈만의 어머니에게 공언했다. 그러나 슈만은 손가락을 강화하는 연습을 과도하게 하다가 오른손 손가락에 장애가 와서 더이상 피아니스트로 활동할 수 없게 되었다. 무리한 연습으로 피아니스트의 길을 포기한 그는 작곡가와 비평가의 길을 선택했다. 슈만은 친구들과 함께 음악 평론 잡지를 발간해서 음악 비평가이자 편집장으로서도 활동했는데, 본명이 아닌 소설 속 인물의 필명으로 글을 자유롭게 발표했다. 그는 그 음악 잡지를 통해 음악 신인 쇼팽과 브람스를 알리는데도 크게 기여했다. 

음악선생 비크에겐 아내 없이 키운 외동딸 클라라가 있었는데, 그녀가 14세가 되던 해, 슈만은 클라라와 사랑에 빠졌다. 클라라는 어려서부터 천재 피아니스트로 이미 명성이 나 있었고 미래가 보장되어 있었다. 피아니스트로서 미래가 끝난 슈만은 이름 없는 가난한 작곡가였기에 클라라의 아버지, 비크는 두 사람의 사랑을 좋게 볼 수 없었다. 하지만, 클라라는 음악을 사랑했지만 엄격하고 독선적인 아버지 밑에서만 음악을 하고 싶지 않았고 다른 연결에 갈증이 있었다. 자신의 집에 함께 사는 청년 음악가 슈만은 문학이나 음악의 지식이 뛰어났기에 그와 대화는 클라라의 목마름을 채워줬고, 사춘기 소녀 클라라는 자상한 슈만에게 빠져들어 사랑을 키워나갔다. 슈만은 클라라와 결혼하길 원했지만, 선생 비크는 노발대발했다. 이후 둘은 18개월간 떨어져 있게 되었다. 

슈만은 이때 피아노를 위한 <판타지>(FANTASY in C Op.7)를 썼는데, 첫 부분의 선율이 순차적으로 하행함으로써 절규하는 듯한 슈만의 슬픔을 보여준다. 클라라에게 “a deep lament for you”라고 깊은 비탄을 편지에 전했다. 절망에 빠진 슈만은 4개월 동안 작곡에 손을 놓고 있기도 했다. 클라라의 17세 생일에 슈만은 편지를 썼다. “그저 간단히 내게 ‘Yes’라고만 답해주면 됩니다. 나의 편지를 아버지에게 전해줄 수만 있다면...” 그리고 슈만은 비크에게 결혼 승낙을 간청하는 편지를 함께 보냈다. 클라라는 이렇게 답장을 했다. “당신의 소망 전부가 단지 ‘Yes’인가요? 너무 약소하지만 소중하군요. 표현할 수 없이 벅찬 내 마음의 사랑을 이 작은 말로 표현할 수 있을까요? 이 말이 내 깊은 뜻을 당신에게 영원히 속삭여 줄까요? 당신의 계획이 조금은 위험해 보이지만 사랑의 마음이 눈을 가리는군요. 그래서 또다시 ‘Yes’라고 말합니다. 신께서는 나의 18세 생일날에도 슬픔을 주실까요? 아버지께 내 젊은 마음이 얼마나 확고부동한 것인지 보여줄 거예요.” 

서로의 마음을 확인한 두 사람은 다시 만나 약혼반지를 교환했고, 슈만의 음악 창작 욕구는 다시 불타올랐다. 슈만은 클라라의 ‘Yes’ 편지를 받고 며칠 내에 <다비드 동맹 무곡집>을 쓰기 시작했다. “이전에 느껴보지 못한 기쁨으로 작곡했어요. 결혼에 대한 많은 상념들 속에서 이 춤곡에 몰두합니다. 이것들은 내가 떠올릴 수 있는 가장 아름다운 흥분상태에서 내게 다가온 것입니다. 곡 전체는 결혼 전야에 관한 것입니다. 내가 가장 행복한 때가 있었다면 그것은 피아노 앞에서 이 곡을 작곡할 때였을 거예요.”라고 슈만은 클라라에게 전했다. 이 곡에서 슈만은 자신의 상상력과 문학적 요소를 결합해 자신의 내면에 있는 이성과 감정에 인격체 이름을 붙였다. 호프만의 소설 <신의 아들들>에 등장하는 대조적인 두 명의 주인공을 모델로 하여 내성적이고 몽상적인 오이제비우스(Eusebius)와 외향적이고 정열적이며 다혈질인 플로레스탄(Florestan)의 첫 알파벳을 따서 각 곡의 끝부분에 표기하였다. 슈만은 이를 통해 클라라와 이별과 재회, 지난날의 행복함과 현실의 괴로움, 미래에 대한 희망과 절망 등을 대조적으로 표현했다. 그리고 곡 제목으로 붙인 “다비드 동맹”은 그 당시 음악계 속물(체르니, 크라머, 마이어베어 등)을 타파해서 음악을 새로운 위상으로 끌어올리려고 슈만이 조직한 가상의 단체이기도 했다. 

▲ 슈만과 클라라
▲ 슈만과 클라라

슈만은 비크에게 결혼 승낙을 받아내지 못하자 결국 법정 소송까지 갔고, 사랑을 위해 끝까지 싸운 슈만은 소송에서 이겨 마침내 클라라와 결혼하게 되었다. 
결혼한 해에 슈만은 120곡의 가곡을 썼는데, 그때 탄생한 것이 하이네 시에 작곡한 연가곡 <시인의 사랑>이다. 슈만은 어린 시절부터 낭만주의 작가들, 장 파울, 호프만, 하이네, 괴테 등의 작품에 매료되어 있었다. 문학적으로 상당한 수준의 그는 하이네 시를 엄선하고 음악에 맞게 바꾸어 가사로 썼다. 그리고 이 가곡은 피아노와 성악의 듀오라고 할 정도로 피아노의 아름다운 선율이 성악과 조화를 이루고 대등한 위치를 갖는다. 사랑을 노래하는 많은 작곡가들의 작품 중, 내겐 특히 <시인의 사랑>에서 말하는 슈만의 사랑이 와닿는다. <시인의 사랑>을 듣거나 연주하면 슈만이 클라라를 얼마나 깊이 사랑하는지 느껴지고 동화되어 나는 가슴 절절한 슈만의 사랑이 되어버린다.
음악과 문학 모두를 사랑했던 슈만이 그 둘을 연결시키는 것은 자연스러웠을 거다. 슈만은 그 둘을 대등하게 통합하기보다는 언제나 문학 위에 음악을 두었다. 내가 하는 “스토리텔링 피아노 콘서트”도 음악을 잘 표현하기 위해 말을 덧입히고 연주하는 것이어서 그의 생각에 반가운 마음이 들었다. 

우리에게 알려진 많은 클래식 작곡가들이 그렇듯 슈만 역시 자기 색이 강한 작곡가다. <나비>, <아베크 변주곡> 등의 피아노 작품을 연주해 보면, 음과 음의 간격인 음정의 진행과 화성이 독특하고 이상하다는 느낌을 받는다. 슈만은 이지적이면서도 감각적이고, 아름다운 노래를 하다가 순간 음정을 비틀어서 일그러진 노래를 하곤 한다. 핀트가 어긋나 이탈했다는 생각이 들기도 하는데, 갑자기 행성이 정상궤도 밖으로 벗어나는 것 같은 독특한 음의 진행과 화성을 슈만은 감각적으로 아는 천재가 아니었을까 싶다. 
누군가는 너무나 자주 변하는 그의 음악이 변덕스러워 부담스럽다고도 했지만, 순간순간 변하는 분위기를 표현해야 하는 슈만의 음악이 내겐 너무나 잘 맞았다. 슈만에겐 양극성 장애가 있었는데, 조증일 때는 왕성한 작품활동을 하고 우울증일 때는 전혀 손을 못 대곤 했다. 
슈만이 겪었던 급격한 감정변화를 경험한 사람이라면, 슈만의 음악에 심정적으로 더 공감할 수 있을 것이다. 나 역시 그러한 이유로 그의 작품을 연주할 때마다 깊은 공감을 통해 위로를 받으며, 그에게 고마운 마음을 갖곤 한다.
음악은 언제나 삶과 함께 동행한다. 아마도 나의 삶이 변하면 그에 따라 다가오는 작품들도 바뀌고, 새로운 작품을 마주하게 될 것이다. 나에게 슈만은 아직 유효하고 나의 삶과 함께 가고 있다. 
오늘은 슈만의 피아노 4중주가 어울리는 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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