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리뷰 - 서울의 봄
영화 리뷰 - 서울의 봄
  • 신대욱
  • 승인 2024.01.08 15: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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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12 군사 반란, ‘역사의 패배자’로 박제된 순간

결말을 알고 있고 바꿀 수도 없지만, 그래도 영화니까 결말이 바뀌지 않을까 하는 기대도 한편에서 들었다. 이런 기대는 영화 상영 내내 조바심과 답답함으로 다가왔다. 국가 시스템이 허무하게 무너졌다는 것을 확인한 순간의 허탈함, 혹은 분노가 강하게 일었다. 영화 <서울의 봄>은 아마도 여기서 출발하지 않았을까.
1979년 12월 12일, 대한민국 수도 서울에서 군사 반란이 일어났다. 앞서 10월 26일 박정희 대통령이 살해된 이후 순식간에 대한민국의 정보기관을 장악한 보안사령관 전두광(황정민)은 군 내 사조직인 하나회를 동원해 계엄사령관인 정상호 육군참모총장(이성민) 강제 연행에 나선다. 정상호 총장은 앞서 사명감이 투철한 이태신 소장(정우성)에게 수도경비사령관을 맡긴다. 10‧26 사태의 수사를 책임지는 합동수사본부장에 오른 뒤 기고만장해진 전두광 보안사령관을 견제하기 위한 방책이다. 이와 함께 정상호 총장은 전두광을 전방 부대로 좌천시키려 한다. 10‧26 사태 이후 국내 정보망을 장악하고 있던 전두광은 이 사실을 알고 10‧26 사태 수사를 빌미로 정 총장 강제 연행에 나서고, 한편으로 최한규 대통령 권한대행(정동환)의 재가를 받아내려 한다. 최 대행은 오국상 국방부장관(김의성) 결재를 먼저 받아오라며 버틴다. 오 장관은 미8군 벙커로 피신한 상태다.
한편, 전두광의 계략에 빠져 술자리에 모이게 된 이태신 소장과 공수혁 특전사령관(정만식), 김준엽 헌병감(김성균)은 전두광이 총장을 연행한 사실을 알고 각자 동분서주한다. 특히 이태신 소장은 예하 부대를 비롯해 8공수 여단을 동원해 전두광의 반란을 막으려고 한다. 이에 맞서 전두광은 친구인 노태건 소장(박해준)의 전방 9사단 병력과 2공수 여단을 서울로 불러들인다. 

9시간 동안 벌어진 반란 과정 긴박하게 재현

영화 <서울의 봄>은 이같은 과정이 벌어진 9시간을 긴박하게 그려낸다. 무엇보다 역사적인 사건인 12‧12 사태를 시간 순서대로 따라가며 반란군과 진압군의 대응을 세밀하게 배치한다. 반란군과 진압군의 대응에서 오는 긴박감은 공수가 수시로 뒤바뀌는 상황 전개로 긴장을 고조시킨다. 결말이 정해진 역사적 사건임에도 영화가 마무리되는 순간까지 압도적인 몰입감을 전하며 그날의 실체에 다가서게 한다. 여기에는 감독의 연출력과 배우들의 빼어난 연기가 뒷받침됐다.
영화에 등장하는 전두광, 이태신, 정상호, 공수혁, 김준엽, 노태건, 오국상, 오진호 등은 각각 전두환, 장태완, 정승화, 정병주, 김진기, 노태우, 노재현, 김오랑 등의 실제 인물을 모티브로 했다. 첫 시나리오상엔 실명이었으나 가명으로 방향을 바꾼 것은 송사가 뒤따를 것이란 우려가 컸다는 전언이다. 무엇보다 실제 사건에 역사적 상상력을 가미하려는 감독의 의도가 반영됐다는 평가다. 그만큼 <서울의 봄>은 역사적 사실을 다큐멘터리처럼 긴박하게 전하면서도 역사로부터 다소 떨어져 있는 픽션이기도 하다. 꼼꼼한 사실 고증은 세세한 자막 설명과 유사 작명, 세심한 기록을 바탕으로 한다. 영화에서 다룬 전체적인 서사는 사실과 부합한다. 
그렇지만 영화는 ‘성공한 쿠데타’보다 ‘실패한 진압’에 방점을 찍으면서 비극성을 극대화한다. 전두광 세력이 승리해서 비극적인 것이 아니라 진압군이 반란군 제압에 실패해 비극적이란 사실을 강조한다. 이 비극성은 이태신 소장을 통해 구현된다. 전두광이 실제 전두환을 뼈대로 살을 붙였다면, 이태신은 실제 모델인 장태완으로부터 많이 이탈해 있다. 영화의 필요에 의해 재창조된 캐릭터라 할 수 있다. 이길 수 없다는 것을 알면서도 앞으로 나아가는 우직한 군인으로서의 이태신은 비열한 웃음과 함께 욕망을 거침없이 쏟아내는 전두광과 대비되며 영화를 이끌어간다.

결말 알아도 긴장감 충만, 배우 열연 호평

<서울의 봄>은 12월 12일 그날의 실제 사건을 취사선택해 이 두 남자의 숨막히는 대결로 압축해 긴장감을 높이는 전략을 택했다. 역사적 실체에 가까운 전두광과 허구적으로 재구성된 이태신의 대결이 드러내는 것은 ‘진압 실패’의 비장함으로 가기 위한 장치일 수 있다. 패배할 수밖에 없는 결말, 예정된 운명과 싸우는 비장함이다. 전두광은 세가 불리하게 돌아가자 쿠데타 성공을 위해 최전방 사단을 동원한다. 반공주의가 엄연히 득세하던 시절임을 감안하면 군대를 사적 욕망을 구현하기 위한 수단으로 여겼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이에 반해 이태신은 군인으로서의 윤리와 소명의식이 투철하다. 그 고집을 밀고 나가는 모습에서 이태신의 패배가 갖는 비극성은 커진다. 사실 정상적으로 군대 명령 체계가 작동했다면 진압에 실패할 수 없는 상황임을 감안하면 우리가 익히 알고 있는 12.12 군사 반란의 성공이 오히려 허구처럼 보인다. 영화를 보는 관객들이 답답함과 함께 분노(심박수 챌린지가 대표적이다)하는 이유기도 하다. 여기에는 육군본부 수뇌부들의 무능과 보신주의, 국방부장관의 처신 등이 얽히면서 가능했다. 무엇보다 저인망처럼 군 곳곳에 스며든 하나회로 인해 명령 체계가 통하지 않고, 진압군의 작전도 감청으로 노출된 상황이어서 이태신의 고군분투가 처연하게 다가온다. 심지어 수경사 예하부대인 30경비단(반란 진압이 주요 목적인 부대다)도 반란군 측에 가담한 상황이다. 전두광

세력이 어설픈 계획 아래 쿠데타를 감행한 이유기도 하다.
모든 진압 상황이 막히자 이태신은 “전두광이를 잡으러 가야지” 하며 남은 병력을 이끌고 30경비단이 있는 경복궁으로 향한다. 이태신은 경복궁으로 향하는 길에서 이순신 동상을 올려다  본다. 군인의 길이 어디에 있는지를 상징적으로 드러내는 장면이다. 
영화 후반부, 이태신과 전두광의 광화문 대치 장면은 허구지만 영화의 하이라이트라 할 수 있다. 아무 것도 할 수 없는 상황에 다다른 이태신은 전두광 세력이 설치한 바리케이드를 넘어 전두광을 향해 나아간다. 반란군에게 맞선 군인 하나 정도는 있어야 하지 않느냐는 이태신의 행동은 비극을 넘어 숭고하기까지 하다. 그렇게 이태신을 비롯해 반란군에 맞선 공수혁 특전사령관과 김준엽 헌병감 등 진압군 세력이 체포되며 12.12는 반란군의 승리로 귀결된다. 그 ‘질 수 없는 싸움’에서 허탈하게 패배한 자리에 허구의 인물 이태신을 핵심으로 내세운 것은 역사에서는 패자가 아닌 승자란 사실을 박제하기 위해서다.
영화 말미 반란 주동자들은 쿠데타 성공을 기념하는 사진을 찍는다. 그러면서 반란 가담 주요 인물의 이력을 하나하나 자막으로 열거한다. 이 장면은 실제 사진으로 고정된다. 역사의 패배자로 영원히 박제되는 순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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