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달의 책 130 - 눈부신 안부
이달의 책 130 - 눈부신 안부
  • 서영민 기자
  • 승인 2024.01.30 16: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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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수린 장편소설, 문학동네 펴냄

올해부터 책을 더 많이 읽자 다짐했는데 아무래도 취향인지 소설책에 손이 자꾸 간다. 책은 알라딘에서 주로 사는데 대형서점 신간 베스트셀러에 대한 약간의 거부감이 있을뿐더러 알라딘의 장점이 베스트셀러 거품이 빠진 출간된지 1년 안팎의 책들을 보통은 30% 정도 싸게 구매할 수 있다. 우리는 보통 고정관념이라는 렌즈를 통해서 어떠한 사건을 바라보게 된다. 이 책은 화자가 이모의 친구였던 죽음을 앞둔 파독간호사의 첫사랑을 찾는 과정을 그린 소설이다. 
‘파독간호사’는 ‘파독광부’와 함께 우리가 어려웠던 시절에 독일이라는 잘 사는 나라의 일자리를 찾아서 떠나는 가난함이 고정관념으로 자리한다. 하지만 소설에서 선자이모가 파독 간호사로 떠난 이유는 반전이 있다. 선자이모의 첫사랑은 이름이 K.H. 근호여서 남자일꺼라는 혼란을 주었지만 교회에서 함께 활동하던 동성 친구였다. 당시 사회에서 두 사람의 풋풋한 감정은 얼마나 안타까웠을까? 두 사람의 사랑이 이루어지기에는 엄청난 사회적 장벽의 두께는 가늠하기 어려웠을 것이다. 선자 이모는 그 사랑의 돌파구로 파독간호사의 길을 택했고, 화자는 자발적 탐정이 되어서 선자이모의 일기장 행간을 파고들며 K.H를 찾아 나선다.
죽음을 앞둔 선자 이모와 K.H가 만나지는 못한다. 선자이모의 아들 한스와 화자는 K.H.를 찾기 위해 고군분투 하고 화자는 촉박한 시간과 선자이모의 첫사랑을 찾지 못할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에 거짓으로 K.H.를 대신해서 선자이모에게 편지를 쓴다. 
선자이모는 한국에서 날아온 K.H.의 편지가 가짜라는 것을 알지만 아들 한스와 친구인 화자가 자신의 첫사랑을 찾기 위해서 애쓴 따뜻한 마음을 알기에 행복한 표정으로 한스가 지켜보는 가운데 죽음을 맞이한다. 화자는 선자이모가 죽었지만 K.H. 찾기를 멈추지 않고 마침내 선자 이모의 첫사랑을 찾아내고 소설은 자신을 대학 때부터 좋아해준 우재를 찾아 착륙을 앞둔 제주도행 비행기에서 끝난다. 

“아무리 네가 의젓하고 씩씩한 아이라도 세상에 혼자 감당해야 하는 슬픔 같은 건 없으니까. 알았지?” p25
►► 어른도 마찬가지이다. 슬픔을 혼자 감당할 필요는 없다. 외로움과 씁쓸함과 슬픔의 경계를 넘나들면서 누군가의 손을 잡기도 하고 놓치기도 하면서 삶은 나아간다.  

다른 사람은 나처럼 고통스럽지 않기 바라는 대신 다른 사람도 적어도 나만큼 고통스러웠으면 하고 바라는 그런 인간이 나라는 걸 알아버렸기 때문에. 그건 내가 처음으로 또렷하게 마주한 내 안의 악의였다. p66
►► 머리로는 열 번도 백 번도 더 수긍하고 용서하는데 가끔 감정이라는 놈이 욱하고 뒤통수를 후려친다. 그러면 가슴이 답답해지고 열이 오른다. 어쩔 수 없이 내 안에 선의와 악의가 공존한다는 것을 인정할 수밖에 없다. 

그렇게 흔들리는 꽃송이들을 보자 멀찍이 떨어져서는 구별할 수 없는 것들이 너무 많다는 생각이 들었다. p126
►► 가까이 있어도 외롭고 가까이 있어도 보지 못할 때가 많을진대 멀찍이 떨어져서는 도통 무감각한 사람이 되고 만다. 고슴도치처럼 가시갑옷을 입고 있으면 다가서지도 못하고 멀찍이 떨어져 있는 것에 익숙해진다. 

우재는 정말 아무 일도 아니라는 듯 말하며 자조적으로 웃곤 했지만 나는 사람이 겪는 무례함이나 부당함은 그것이 아무리 사조하더라도 물에 녹듯 기억에서 사라지는 게 아니라 침전할 뿐이라는 걸 알았고, 침전물이 켜켜이 쌓여 있을 그 마음의 풍경을 상상하면 씁쓸해졌다. p142
►► 어떠한 강한 충격으로 그 침전물들이 흩어지는 상황에서 걷잡을 수 없이 감정은 폭발해 버린다. 그래서 쏟아내고 비우고 과정을 반복해야 한다. 그렇게 큰 그릇이 되자고 다짐했지만 언제나 감정은 그릇에 차고 넘쳐버린다. 

침묵은 비겁함 외에 아무것도 아닐 거니까. p200
►► 대답과 아첨을 강요할 때 침묵하는 것도 용기나 저항이 될 수 있다. 정말 무서운 것은 방관의 침묵이다.   

사람은 누구나 갑자기 죽는다는 거였어. 멀리서 보면 갑작스러워 보이지 않는 죽음조차 가까운 이들에겐 언제나 갑작스럽지. 그리고 또 하나는 삶은 누구에게나 한 번뿐이라는 것. p226
►► 세상에 호상이란 없다. 그 어떤 죽음도 누군가에게는 슬픔이다.  

기자로 취재할 때도 그랬지만 타인의 인생에 흙 묻은 신발을 신고 들어가는 불청객이 될지 모른다고 생각하면 내 마음은 매번 갈피를 차릴 새 없이 흐트러지곤 했다. p260
►► 과거보다는 기자가 기자가 아닌 세상이 되어버렸다. 클릭 전쟁의 노역자로 전락하고, 어정쩡하게 광고주의 눈치를 살펴야 하는 주변인으로 비루하기 쉽다. 기자라는 타이틀의 무게감이 떨어진 시대이다. 오죽하면 기레기라는 신조어도 나왔을까? 

아주 작은 가능성이라도 있으면 사람은 희망을 보지. 그리고 희망이 있는 자리엔 뜻밖의 기적들이 일어나기도 하잖니. p304
►► 그랬으면 좋겠다. 작은 희망들을 붙들고 나아가는 올해이고 싶다. 내가 멈춘다고 세상이 멈춰지지 않듯이 삶도 멈춰지지 않으니 반걸음씩이라도 나아가야 한다.  

한참 만에 용기를 내어 사과하자 헤나는 웃으면서 “언니, 원래 사람들은 다 자기를 중심으로 생각하는 거야”라고 말했다. “그중 조금 더 성숙한 사람은 사과를 할 수 있는 거고.” p306
►► 그래도 사과는 자신이 잘못했다는 것을 인지하고 난 이후의 일이다. 그것도 인지하지 못하는 경우가 얼마나 많은가? 대상이 사라진 사과는 공허하기도 하다. 최근 영화 ‘서울의 봄’ 전두환 역할을 맡았던 배우 황정민씨가 광주시사회에서 사과했다. 공허하고 안타까운 사과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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