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악이야기 - 아름다운 음악처럼
음악이야기 - 아름다운 음악처럼
  • 신은경
  • 승인 2024.03.27 12: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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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름다운 음악처럼 

눈을 차창 밖으로 던져놓고 이어폰을 귀에 꽂는다. 헨델의 미뉴엣 g minor, 조성진의 연주다. 아름답다. 내가 듣는 건 음악이 아니라 몇백 년 전 영국의 어느 영혼임을 안다. 내가 그 영혼과 시공간을 초월해 이렇게 연결되어 있다니, 뜨거운 눈물이 내 마음을 대신해줄까.

오래도록 내 인생에서 나는 음악으로부터 내동댕이쳐진 느낌이었다. 그런데 어느새 삶의 한가운데 음악 안으로 들어와 있었다. 이번 사고가 아니면 나는 아마 그것을 깨닫지 못했을 것이다.

내리막길 코너가 아직도 생생하다. 자전거 브레이크를 잡고 있는데도 예상 밖의 빠른 속도에 아무것도 손쓰지 못하고, 나는 그저 다리 난간에 오른쪽 어깨와 손을 정면으로 부딪쳤다. 어떤 일이 일어날지 뻔히 보이는데도 아무런 방어를 할 수 없었다. ‘쿵!’하는 부딪힘의 반동으로 나와 자전거는 반대로 쓰러졌다. 마음은 일어나야 한다고 생각했으나, 몸은 반응하지 않았다. 동료들의 도움을 받아 겨우 앉아서는 손부터 살펴보았다. 부딪히면서 네 번째 손가락에 전기가 흘러 찌릿했기 때문이었다. 부어오르고 퍼렇게 멍이 들긴 했지만, 내 눈과 마음은 무조건 확신했다. 부러진 것은 아니라고! 그리고 그래야만 했다. 2주 뒤 피아노 연주가 있었고, 나는 어떤 상황에도 그것을 문제없이 해낼 것임을 전혀 의심하지 않았다. 나의 뇌는 오로지 2주 뒤 연주에 가 머물렀고, 손을 어떻게 관리해서 연주할 수 있을 것인가만 생각했다. 몸 다른 부위의 찰과상과 멍은 머릿속에 들어오지도 않았다.

뼈에 이상이 없을 거라 생각했지만, 확인 차원에서 엑스레이를 찍었다. 내 예감은 완전히 빗나갔다. 의사는 흑백의 사진 속에서 네 번째 손가락에 금이 갔고 손가락 끝의 뼈들은 부서져 있다고 읽어냈다. 4주간 연주할 수 없다는 진단을 받았지만, 나는 실망하지 않았다. 일주일 안에 뼈를 붙게 만들고, 나머지 일주일간 연습해서 연주하겠다고 나만의 스토리를 만들었다. 통증은 고려대상도 아니었다. 작은 통증에도 호들갑 떨던 내가 갑자기 어른이 되어있었다.

아이들은 모두 성년이 되어 나는 가족 돌봄에서 좀 더 자유롭게 되었고, 그동안 준비해 온 꿈을 펼쳐보겠다고 호언장담 후 선물처럼 온 첫 초청연주였다. 의미 부여를 많이 한 연주회이자, 2024년의 힘찬 스타트를 알리는 스토리텔링 피아노 콘서트였다. 내면에서 ‘음악에 헌신하라’는 메시지까지 받았기에 그 일정에 차질이 생길 이유가 없다 믿었다. 그 믿음이 강해서 내 마음은 여전히 평온했다. 세상의 일반적인 흐름에서 벗어나 기적이 일어날 거라 믿었다.

멍든 손

사고 직후, 엉겨 붙었던 네 손가락이 점차 떨어지기 시작했다. 붓기도 차차 빠지고 퍼런 멍도 초록 멍으로 옅어지고 있었다. 마음은 언제라도 연주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손가락 컨디션이 좋아지는 것을 보며 필시 금이 붙었으리라 생각했다. 4일 후, 급한 마음에 다시 엑스레이를 찍었다. 아직 붙지 않은 상태였다. ‘그래, 조금 더 기다리면 금이 붙을 거야.’ 혹시 모르니 연주회를 위해 다른 피아니스트에게 연습해달라고 부탁했다. 그러면서도 결국은 나의 손가락으로 연주할 수 있을 거라고 기대했다.

다음 주 다시 엑스레이를 찍으러 정형외과에 갔다. 이럴 수가! 손가락의 금은 여전히 검게 공간을 비워두고 있었다. ‘연주회는 일주일도 남지 않았고 이제는 정말 금이 붙어야 연습할 수 있는데...’ 상황은 내 예상을 계속 빗나갔다. 정말 내 손가락으로 연주하지 못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은 평온한 마음을 일렁이게 했다. 

왜 이런 일이 생기는 것일까. 일이 시작도 전에 왜 멈추게 되는 걸까.
이 물음은 후회나 원망의 물음이 아니었다. 현상 뒤에 감춰져 있는 메시지가 무엇인지 알고 싶었다. 

<의식혁명>의 저자 데이비드 호킨스는 “모든 아픔과 고통의 원인은 압착한 에너지장의 누적에 있으며, 삶의 사건들은 이런 에너지를 분출할 빌미를 제공해준다”고 했다.

이 사건을 통해 어떤 에너지가 나가는 것일까? 
처음 접하는 사이클의 높은 안장과 땅에 닿지 않는 발로 인해, 나는 컨트롤할 수 없다는 무서움과 넘어질 것 같다는 두려움의 페달을 번갈아 밟고 있었다. 하지만 희한하게도 낙차 사고가 일어났을 때, 갑자기 모든 두려움이 끊어지고 평온해졌다. 두려워하던 일이 일어났을 때, 오히려 두려움으로부터 해방되었다. 삶의 모든 긴장이 해소되었다.

가만히 앉아 호흡을 가다듬고 이제 어떻게 해야 하는지 내면에 물었다. 
‘아름다움의 도구로 이 세상에 왔으니, 가장 아름다운 방식으로 연주하라’는 메시지가 메아리쳤다. 내게 아름다운 방식은 무엇일까. 내 손가락으로 연주하지도 못하는데, 음악의 진정성을 어떻게 청중에게 온전히 전달할 수 있을까. 그 답은 어느 선생님의 입에서 흘러 나왔다.

 “다른 이의 손을 빌어 마음으로 연주하세요. 그리고 청중에게 축복과 사랑과 빛을 주세요.”

이후, 내가 할 수 있는 일을 했다. 스토리텔링 피아노 콘서트의 멘트를 마치 성우가 된 것처럼 집중해서 연습했다. 그리고 연주 부분은 다른 피아니스트에게 위임하고 음악에 대한 터치를 일절 하지 않았다. 그저 마음속에서 아름다운 음악을 함께 연주했다. 

연주 당일, 두 명의 피아니스트가 함께 무대에 올랐다. 나는 연주회 내내 피아노 건반 앞이 아닌 무대 중앙에서, 청중을 정면으로 바라보며 멘트를 했다. 내게는 색다른 무대 경험이었다. 귀로 들리는 연주와 마음에서 울리는 음악이 서로 다를지라도, 음악 안에서 피아니스트와 청중을 연결하려고 끊임없이 노력하며 무대를 지켰다. 감사하게 청중의 시선은 무대로 쏟아졌다. 음악회를 주관하신 분이 연주가 끝나자마자 대기실로 오셔서, 연주회 내내 100% 순도로 집중했다며 감격해하셨다. 자신들의 스토리를 바탕으로 한 연주회였기 때문이었을까. 누군가는 자신이 주인공이 된 영화의 OST를 듣는 것 같았다고 했다. 이번 스토리텔링 피아노 콘서트의 주제는 [음을 이야기하다, 나]였다. 삶의 중심으로서 자신을 반추하는 기회가 되었으면 했는데, 청중이 그 의도를 받아들여 주니 그것 또한 감사했다. 사고가 있었지만, 모든 것이 무사히 지나가고 있었다.

사고는 나의 이해를 넘어서는 일이었다. 그럼에도 무대에 오르기까지 음악을 포기하지 않았다. 내 손가락은 건반에 닿을 수 없었지만, 마음은 건반에 닿아 현을 울리고 있었다. 그로 인해 음악에 대한 이해는 깊어지고 마음에 흐르는 음악을 더욱 사랑하게 되었다. 건반에 손이 닿지 않았기에 생긴 마음의 변화였다. 시간이 갈수록 연주를 놓지 않으려는 고집과 계획 또한 비우고, 손가락 상태를 있는 그대로 수용하면서 내 안에 여유를 들이는 공간이 만들어졌다. 
음악이 아름다운 만큼, 삶도 아름답기를 늘 바래 왔다. 
사이클 낙차 사고는 그 둘의 간극을 좁혀나가라는 신호였을까. 일어날 모든 것이 완벽하게 일어났음을 받아들이니, 삶이 아름다워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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