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달의 책 133 - 너무나 많은 여름이
이달의 책 133 - 너무나 많은 여름이
  • 서영민 기자
  • 승인 2024.03.27 13: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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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연수 지음, 레제 펴냄

소설은 사람 살아가는 이야기다. 그 이야기를 엮어나가는 사람이 소설가이리라. 이 책은 여러 단편소설들이 묶여있는 소설책이다. 하나하나의 이야기들이 다채롭게 펼쳐지고 어떤 문장에서 지금의 나를 발견하면 내 이야기가 된다. 나는 지금 소설 같은 세상을 살고 있을까? 작가가 내 삶을 엿보고 이 소설들을 썼을까? 멍 때리는 상념에 빠져서 허우적거린다. 

세상에는 해봤자 별로인 일들도 너무 많아. p41
►► 그래 아무것도 하지 않은 것이 더 나을 때가 많다. 인생을 살만큼 살았는데도 잘 살고 있는 것인지, 이렇게 사는 것이 맞는 것인지, 앞으로 또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정답을 찾을 수 없다. 삶의 본질이 그러한 것인지 모르겠다. 

지금까지 우리가 어떻게 살아왔는지는 하나도 중요하지 않아. 중요한 건 앞으로 어떻게 살아갈 것인가야. 과거는 다 잊어버리자. 내가 어떤 집에서 태어났고, 어떤 사람이었는지, 누구를 만나 사랑을 했고, 어떤 꿈을 가졌는지 잊어버리자. 대신에 오로지 미래만을 생각하기로 해. 이제까지는 과거가 지금의 나를 만들었다면, 앞으로는 미래가 지금의 나를 만들 수 있도록 말이야. p57
►► 잊어버리자. 컴퓨터 부팅처럼 모두 리셋되고 새로운 나로 오늘을 살아간다면 좋겠다. 과거의 내상과 현실이 짓누르는 무게에 치이다보면 미래를 꿈꾸는 것이 사치가 되고 만다. 몸은 한없이 가라앉아 지하 몇 층 쯤을 내려가고 있는데 바닥이 어딘지 가늠할 수 없다. 그래도 정신 줄을 붙들고 미래를 생각해야 한다.

통상적으로 수국의 꽃말은 ‘변하는 마음’인데, 그런 꽃의 색깔이 자주색에서 파란색으로, 또 빨간색으로 바뀌기 때문이다. 그런데 다른 꽃말도 있으니 물이 없으면 금방 시들었다가도 물을 주면 되살아나는 습성 때문에 ‘진짜 마음’이라는 뜻도 있다. ‘변하는 마음’과 ‘진짜 마음’은 반대되는 마음이라 흥미롭다. p77
►► 몇 년 전 제주도 어느 농원에서 흐드러지게 피어나 다양한 색깔을 자랑하는 수국을 볼 수 있었다. 수국이 피어나는 계절에는 다른 꽃들은 경쟁하면 안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 모습이 너무나 매혹적으로 시선을 끌었기 때문이다. 수국이 그렇게 다채롭게 보였던 것은 변하는 마음과 진짜 마음을 왔다 갔다 홀렸나보다. 

열어볼 수 없다니까. 그게 규칙이야. 과거는 통조림 속에 들어 있고, 우리에게는 따개가 없어. 그러니 누구도 과거를 바꿀 수는 없는 거야. p79
►► 아름다운 추억말고는 과거를 돌아보지 말자. 이미 흘러가 버려 내 손을 떠나 버렸다. 과거를 바꿀 없다는 불변의 법칙은 역설적이게도 현재에 충실해야 함을 일깨운다. 엄격한 의미에서 현재는 찰라의 순간이다. 그래서 우리는 과거와 현재 미래를 어느 정도 단위로 나누어서 구분해야 한다. 
제 감정과 자아는 그렇게 분리되고 있었습니다. 행동하는 ‘나’와 지켜보는 ‘나’는 물과 기름처럼 분명하게 나누어졌죠. 제가 둘로 찢어지는 것은 피할 수 없는 일처럼 보였습니다. p97
►► 자아가 분리되면 스멀스멀 화가 차오릅니다. 아직도 한 참 수양이 부족할 터이니 나약한 인간이 되고 맙니다. 행동하는 나는 사라지고 지켜보는 나가 초라해집니다.

제 뒤에 오는 사람들은 지금 쓰러져 울고 있는 땅 아래에 자신이 모르는 가능성의 세계가 존재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았으면 합니다. 원한다면 얼마든지 그 세계를 실현시킬 수 있다는 사실을 알았으면 합니다. 오직 이유 없는 다정함만으로 말입니다. 제가 소설을 쓰고 출판하는 이유는 거기에 있습니다. p114
►► 이 땅은 저 바다는 수많은 사람들이 왔다가는 걸 지켜봤을 것이다. 울고 웃는 사람들. 나도 그 중의 한 사람일 뿐이다. 소설을 왜 좋아할까? 왜 쓰고 싶어 할까? 내 가능성의 세계가 거기에 있다고 생각하는 것일까? 망상일까?

우리의 위치가 모든 걸 결정해. 우리가 감각하는 세상에는 절대적으로 크거나 절대적으로 작은 것이 없어. 멀고 가까운 것만 있는 거야. 그러니 어떤 대상의 크기는 우리가 어디에 있느냐에 달려 있어. 그 위치가 우리의 의지를 뜻해. 아무리 크다고 해도 우리 위치에 따라 얼마든지 작게 만들어 버릴 수 있어. p137
►► 인간관계도 내 가까이 있고 자주 만나는 사람이 친한 사람이다. 물론 오랜만에 한번을 만나도 큰 기쁨을 주는 관계도 있다. 하지만 그런 관계는 많지 않다. 한 방 홈런의 행복보다 매회 때리는 안타가 결과적으로 경기를 더 즐겁게 보듯이 가까운 곳에 자주 안타를 때려주는 관계가 소중하다. 욕망한다면 가까이 다가가서 크게 보아야 한다. 

소설가의 재능이란 꿈꾸는 것이 전부다. 꿈꾸는 능력은 꿈을 현실로 만든다. 하지만 꿈같은 현실이 내 것이라고 생각한 적은 한 번도 없었다. 결코 내 것이 될 수 없는 이 선물에 나는 지금까지도 만족하고 있다. p188
►► 드라마틱한 꿈을 꾸고 깨어나면 물거품처럼 흩어지기 전에 몽유병 환자처럼 끄적일 때가 있었지만 재가공은 하지 못했다. 꿈을 현실로 만들때도 행복하지만 꾸고 있을 때도 행복하다고 믿고 싶다. 

천문학적인 발견이란 관측을 통해서 어떤 별을 존재하게 만드는 일이다. 말하자면 어떤 별은 우리가 보는 순간부터 반짝이기 시작한다. 우리의 관측이 별을 탄생시키는 것이다. p238
►► 나의 존재가치는 나를 발견해주는 사람들에 달려있다. 내가 누군가를 발견해준다면 내 안에서 누군가를 창조한 전지전능한 영역으로 넘어간 것이다. 

나의 소유를 줄일수록 자연은 점점 늘어난다. 통나무집이 작아질수록 집 밖의 공간은 그 만큼 불어나듯이. 무소유란 어떤 의미에서는 자연을 다 가진다는 뜻이기도 하다. p247
►► 미니멀리스트로 살아가기 위해서는 때로는 남의 시선 따위는 무시해야 한다. 미니멀하지만 초라하지는 않게, 가볍지만 부족함은 없게, 최소한의 소유로 살아가는 연습을 해야 생전이나 사후나 정리가 쉬워진다. 

잘못된 선택은 없다. 잘못 일어나는 일도 없다. ‘그러므로’ 사랑하라. 그대가 좋아하는 것을 하라. p281
►► 그래 잘못된 선택은 아니었다. 잘못 일어나는 일도 아니었다. 그럴 만 해서 펼쳐진 상황이다. 마음이 끄는 방향으로 몸이 끄는 방향을 한 걸음씩 나아가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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