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네마 리뷰] ‘원더스트럭’
[시네마 리뷰] ‘원더스트럭’
  • 미용회보
  • 승인 2018.06.25 15:03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뉴욕, 박물관, 그리고 영화의 역사

 

 

*이 글은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시궁창 속에서도 우리중 누군가는 별을 바라본다.”
오스카 와일드의 글귀다. 영화 <원더스트럭>에 인용된 이 문구는 영화 전체를 이끄는 중요한 역할을 한다. 경이로운 세계의 발견 또는 이상을 향해 나아가는 여정의 지표가 될 법한 문구라는 점에서다.
영화 <원더스트럭>은 1927년을 배경으로 한 소녀와 1977년을 살고 있는 소년의 가출기를 교차하며 보여준다. 스토리는 단순하다. 각각 엄마와 아빠를 찾는 여정이다. 성장담처럼 보이지만 곳곳에 깔린 상징은 제목처럼 경이로운 세계의 발견으로 나아간다. 혹은 세계의 재구성이다.
1977년, 불의의 사고로 엄마를 잃은 소년 ‘벤’은 우연히 엄마의 서랍장 속에서 한 번도 본 적 없는 아빠에 대한 단서가 담긴 책 ‘원더스트럭’과 한 서점의 주소를 발견하고 뉴욕으로 떠난다. 1927년, 엄격한 아버지의 통제를 받던 소녀 ‘로즈’는 어느 날, 자신이 선망하는 여배우(로즈의 엄마다)의 공연 기사를 보고 무작정 집을 뛰쳐나와 뉴욕으로 향한다. 벤과 로즈의 스토리는 뉴욕 자연사박물관에서 하나로 이어진다.

 

 

 

큐레이션, 영화에 대한 영화

로즈와 벤은 소리 없는 세계를 공유한다. 로즈는 선천적인 청각장애인이며 벤은 사고로 청력을 잃었다. 그리고 각각의 이유로 ‘스타’와 연결된다. 로즈는 스타(무비스타)를 동경하며, 벤은 천체에 관심이 많다.
“시궁창 속에서도 우리중 누군가는 별을 바라본다”는 문구는 벤의 엄마가 방에 붙여놓은 메모다. 벤은 무슨 뜻이냐고 묻고 아빠와의 관련성을 유추한다. 엄마는 그게 무슨 뜻인 것 같냐 고 반문한다. 엄마가 불의의 사고를 당한 이후 홀로 남은 벤은 이 문구의 의미를 스스로 알아내야 한다.
이 대화 장면에 데이비드 보위의 ‘스페이스 오디티’가 흐른다. 스페이스 오디티는 지상관제소에 있는 사람과 우주선에 있는 톰 소령과의 대화로 이뤄진 노래다. 아폴로 11호가 달에 착륙하기 전 발표된 곡이다.
알려졌다시피 스페이스 오디티는 1년 전(1968년) 먼저 나온 스탠리 큐브릭 감독의 영화 ‘스페이스 오딧세이’에 영향을 받은 곡이다. 영화 <원더스트럭>에는 스페이스 오딧세이의 주제곡인 요한 스트라우스의 ‘짜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도 주요 장면에 흐른다.
소년 벤이 등장하는 1977년은 태양계 무인 탐사선인 보이저 1호, 2호가 발사된 해이다. 또 스티븐 스필버그의 영화 ‘스타워즈’가 개봉한 해(이른바 블록버스터가 본격화한 시점)이기도 하다.
로즈와 벤의 소리 없는 세계는 이렇게 우주와 연결돼 있다. 소리 없는 세계는 무성영화 방식을 도입한 것에서도 확인된다. 1927년 로즈의 이야기는 흑백의 무성영화 포맷으로 대사 없이 처리됐다. 1927년은 최초의 토키(유성영화)인 ‘재즈싱어’가 개봉한 해이다. 실제 <원더스트럭>에서 뉴욕에 도착한 로즈가 엄마의 출연 영화 ‘폭풍의 딸’을 보고 극장을 나올 때, 유성영화 설비 설치로 임시 휴관한다는 공고문과 마주치는 장면이 이를 잘 보여준다. 청각장애인 입장에서 보면 이 공고문은 이제 영화를 즐길 수 없다는 말과도 같다. 무성영화 스타였던 로즈의 엄마가 연극 무대에 선 장면도 이를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그리고 로즈와 벤을 연결하는 1977년은 무성영화 시대의 최고 배우이자 감독인 찰리 채플린이 사망한 해이기도 하다.
토드 헤인즈 감독은 이처럼 주요 영화의 역사와 20년대, 70년대의 뉴욕 풍경과 사건 등을 끌어와 재배치했다. 영화 역사를 큐레이터처럼 재배치하고 하나의 세계를 재구성한다. 영화에 관한 ‘원더스트럭’을 만든 셈이다. 영화의 엔딩에 흐르는 ‘스페이스 오디티’는 실제 청각장애인들이 불렀다. 음정과 박자가 어긋났어도 이 영화를 관통하는 자신만의 언어(세계)를 찾는 여정이라는 주제와도 맞닿아 있다.
로즈와 벤은 청각장애인이지만 수화를 할 줄 모른다. 로즈의 시대는 수화 교육기관이 없던 시절이며, 벤은 사고로 청력을 잃어서다. 무성영화라는 방식을 고수하기 위한 설정이다. 수화를 한다면 자막을 넣어야 하기 때문이다.
벤은 귀가 멀었지만 말까지 잃은 것은 아니다. 이는 영화 후반부 77년의 로즈(벤의 할머니, 줄리언 무어가 27년의 로즈 엄마와 1인 2역)의 말을 벤이 대신하는 것으로 표현된다. 어쩌면 참았던 말을 한꺼번에 쏟아내듯, 그동안의 사연을 글로 적어 벤의 입으로 말하게 하려는 이유에서인지도 모른다.

디오라마와 파노라마, 박물관의 기원

“큐레이터의 일은 중요하다. 박물관이 뭘 소장할지 그가 결정한다. 개인 컬렉터도 역시 큐레이터다.” 벤이 엄마의 방에서 발견한 ‘원더스트럭’이라는 책 초반에 나오는 구절이다. 아빠를 찾는 단서가 된 이 책은 박물관의 기원에 관한 책이다.
이 책 속에 등장하는 ‘호기심의 방’은 17세기 유럽의 귀족들이 진기한 것들을 수집해 진열했던 구조물로, 박물관의 기원이다. 이 영화에서 박물관은 역사를 재구성하는 원형의 공간으로 중요한 역할을 한다.
뉴욕에 도착한 로즈와 벤은 각각의 시대에 들른 자연사박물관에서 시간을 공유한다. 박물관의 같은 자리에서 거대한 운석을 바라볼 때 이미 같은 세계를 바라보고 있는 셈이다. 시간이 흘러 77년의 로즈와 어린 벤은 또 같은 자리에서 디오라마로 재현된 늑대(벤의 꿈에 나타난 것도 늑대다)를 바라본다. 박제된 늑대는 벤의 아빠가 제작한 것이다. 또 벤과 로즈를 이어주는 매개이기도 하다. 벤의 아빠는 자연사박물관의 디오라마 제작자로 미네소타주 건플린트 호수 인근에 출몰하는 늑대를 관찰하기 위해 벤의 엄마 도움을 받았다. 이게 인연이 돼 벤이 태어났다. 벤의 아빠는 로즈의 아들이다.
벤은 ‘원더스트럭’ 책갈피에 적힌 서점을 찾고 로즈를 만난다. 로즈는 단번에 벤이 손자인걸 알아챈다. 그리고 자신이 근무하는 퀸즈뮤지엄으로 데려가 그동안의 사연을 알린다. 로즈는 뉴욕시를 축소해 재현한 뉴욕 파노라마 제작자이자 관리자로 나온다. 이 파노라마 제작에는 그녀의 아들, 즉 벤의 아빠도 참여했다. 실제 퀸즈뮤지엄에 전시된 뉴욕 파노라마는 64년 열린 뉴욕 세계 박람회를 위해 제작된 것으로 당시 모든 뉴욕 건물 89만5,000개가 그대로 재현된 모형이다.
로즈는 벤에게 뉴욕 파노라마를 배경으로 50년의 시간을 요약해 설명한다. 공간의 축소와 함께 시간도 압축된다. 파노라마 곳곳에 벤과 얽힌 개인사를 숨겨놨다고도 털어놓는다. 개인의 역사가 담긴 파노라마. 그렇게 하나의 퍼즐을 맞추듯 이야기는 이어지며 벤의 ‘원더스트럭’은 완성된다.

 


 

신대욱

현 주간신문 CMN 편집국 국장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 서울시 서초구 방배로 123 미용회관 5층
  • 대표전화 : 02-585-3351~3
  • 팩스 : 02-588-5012, 525-1637
  • 명칭 : 대한미용사회중앙회
  • 제호 : BeautyM (미용회보)
  • 대한미용사회중앙회 모든 콘텐츠(영상,기사, 사진)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은바, 무단 전재와 복사, 배포 등을 금합니다.
  • Copyright © 2024 대한미용사회중앙회. All rights reserved.
ND소프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