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콘텐츠 큐레이션] 아름다움 너머 기억을 함께 본다
[콘텐츠 큐레이션] 아름다움 너머 기억을 함께 본다
  • 미용회보
  • 승인 2018.07.30 17: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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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실 그리고 애도⑦


이 물은 어디서 왔는가
생수병을 통째로 들고 마시다 플라스틱 물병에 붙은 비닐 라벨에 시선이 멈췄다.
붉디붉은 동백꽃이 보였기 때문이다. <4.3 70주년 2018 제주방문의 해> 타이틀 디자인에 스며든 동백꽃. 누군가 내게 꽃을 좋아하냐고 물으면 딱히 좋아하지 않는다고 말하지만, 그래도 좋아하는 꽃을 말해보라고 재차 물으며 ‘그렇다면 동백꽃’을 좋아한다고 말해왔기에 타이포그래피(Typography)로 디자인된 동백꽃이 눈에 쏙 들어왔으리라. 사실 제주에서는 동백꽃을 피하는 경향이 있었다고 한다. 온전한 상태에서 툭~툭~ 떨어지는 꽃송이에서 목이 잘리는 불길한 모습을 연상하게 했기에 4.3사건이라는 트라우마 공동체인 제주인들이 멀리하게 됐다는 동백꽃이기에 더욱 강렬하게 다가왔다. 4.3 70주년의 붉은 글자에 당시 희생자들이 동백꽃이 지듯이 차가운 땅으로 쓰러져 갔음을 각성하게 한다.

 

그림 1 제주방문의 해 기념로고


동백꽃 인식으로 ‘이 물은 제주의 어느 지역으로부터 왔을까?’ 하는 궁금증이 일어 사각 생수통을 천천히 돌려가며 정보를 검색한다. 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 조천읍 남조로. 제주에서도 조천이란다. 아····. 조천. 제주 여행시 만났던 조천 북촌리 너븐숭이와 애기무덤 그리고 소설가 현기영 선생의 <순이삼촌>의 한 문장이 떠오르며 먹먹함이 밀려오고야 말았다.

“이 섬 출신이거든 아무나 붙잡고 물어보라.
필시 그의 가족 중에 누구 한 사람,
아니면 적어도 사촌까지 중에 누구 한 사람이
그 북새통에 죽었다고 말하리라.”

 

그림 2 제주시 조천읍 북촌리 너븐숭이의 <순이삼촌>문학기념비

 


빨간 섬, 이라 불린 제주 아름다움 너머 기억을 본다

연간 1,500만 명이 방문하는 국제적인 관광지 제주. 최근에는 해마다 15,000명 이상이 아름다운 경치와 쾌적한 생활을 누리기 위해 제주로 ‘자발적 유배’라는 이름을 붙이며 이주하고 있다고 한다. 필자에게도 제주는 여러 번의 교통사고로 몸과 마음의 회복이 간절하던 2016년 늦가을 치유를 위해 여러 번 찾아간 장소다. 21일간의 제주 머뭄에서 제주의 아름다움 너머 서린 제주라는 땅의 이야기, 제주 사람들, 대한민국 현대사의 트라우마와 아픔이 서려 있는 장소들을 발품을 팔아 찾아다녔다. 일부러 다크투어리즘(Dark Tourism 재난 현장이나 참사지 등 역사적인 비극의 현장을 방문하는 여행)을 계획한 동선이 아니었으나 필자의 관심사를 따라 다니다 보니 결국 상실과 애도의 공간을 찾아다닌 셈이 되었다.

조천읍 북촌리 너븐숭이, 다랑쉬오름, 정방폭포, 함덕 해변, 중산간 마을, 성산 일출봉과 천지연폭포. 7년 7개월간 이어진 ‘4·3사건’으로 3만여 명(확인 희생자 2만 명)이 희생된 제주의 유명 관광지는 거의 모두 4·3 유적지라고 할 수 있다. 제주를 가면 어디를 가나 4.3과 만나게 된다. 곧 제주도 전역이 4·3이 남겨 놓은 땅의 흔적이라는 의미다. 그러나, 이 비극적인 역사적 사실을 귀와 눈, 생각을 열어 인식하지 않고서는 같은 장소를 봐도 그 아름다움 너머가 보이지 않을 것이다. 또한 그 너머를 보지 않고서는 제주도와 제주도인들을 온전히 이해한다고 말할 수 없고 ‘제주도 사람들은 섬이라 배타적이네’라고 간혹 함부로 말하는 것을 듣게 된다.

아름답고 평화롭게만 보이는 제주의 바닷가와 특색있는 박물관, 예쁜 카페로 가득 찬 섬의 뒷모습에 스며있는 4.3 사건의 아픈 상처와 역사는 여전히 생생하게 현재 진행형이다. 우리 현대사에서 6·25전쟁 다음으로 인명피해가 많았던 비극적인 사건으로 진상규명이 되기까지 반세기가 넘게 걸린 슬픈 역사의 공간이다. 당시의 목격자, 희생자 가족 그로 인한 개인의 역사적 고통이 여전히 그대로 남아 있어 지나간 역사 이야기일 수가 없다. 아직 우리는 동시대의 제주를 살고 있다. <순이삼촌>의 문장으로 보듯 제주 사람들 대부분은 제주 4·3과 직간접적으로 연관되어 있다고 한다.

정부는 지난 2007년 제주도를 ‘세계평화의 섬’으로 지정했다. 정부는 ‘평화의 섬’ 지정 근거로 여러 가지를 들었지만, 그 가운데서도 해방 이후 일어난 제주 4·3사건의 폐허를 딛고 일어난 제주 사람들의 의지와 화해·상생의 정신을 평화의 개념 속에 담았다고 한다. 제주에 갈 때마다 가는 장소 중의 한 곳이 제주 4·3사건을 한눈에 볼 수 있는 제주시 봉개동 제주 4·3평화공원이다. 가까이는 다가오는 여름 휴가지로 제주를 염두에 두고 계신 독자 중에 제주 4.3평화공원과 조천 너븐숭이 등의 장소를 답사하는 [제주 평화기행]여행을 추천해 드리고 싶다.

 

 그림 3 제주 4.3 평화기행 추천

 

문화란 죽음을 인식하고 기록하는 간절한 삶의 행위

지난 6월 2일에, 서울 광화문 한복판에 있는 대한민국역사박물관에서는 특별한 토크콘서트가 열렸다. 앞서 3월 30일부터 오는 7월 3일까지 [제주 4.3 이젠 우리의 역사]라는 특별전과 사진전이 함께 개최되고 있다. 엄혹한 시절 지하에 갇혔던 제주4·3사건을 1989년부터 1999년까지 10년 동안 무려 7000명에 달하는 4·3증언자 채록과 10년 500회 가까운 연재로 이어져 한국언론사의 신기록을 세운 탐사보도의 주인공 중 한 사람인 김종민(前 4.3 위원회 전문위원) 강연자의 이야기를 통해 역사에 대한 기억과 이해, 그리고 희생자에 대한 존중과 올바른 애도의 중요성을 깊이 느낄 수 있는 귀한 시간이었다. 한 발짝 더 깊이 들어가 보면 제주 4.3사건이라는 특정 지역의 모습이라기보다 그 안에서 전개된 역사, 그리고 그 역사를 침묵하지 않고 소설로, 그림으로, 시로, 기사와 기록 등 인간이 표현할 수 있는 모든 문화적 방식으로 기억하고 숙고해 온 삶을 향한 절박한 행위가 있었기에 늦었지만 이젠 우리가 함께 기억하는 역사가 되어가리라. 현재 제주의 이 아름다움은 저절로 생긴 것이 아니라 70여 년 전 깡그리 불타버려 아무것도 남지 않았던 폐허의 땅에서 당시 열 살 소년 소녀들이 고사리 같은 손으로 다시 일으켜 세우고 지켜온 아름다움이니 그것을 부디 함께 기억해달라는 그의 담담한 목소리가 오래도록 여운이 남는다. 참고로 4.3 70주년을 맞는 올해 제주도 내 공영관광지는 입장료가 무료라고 한다.

 

 

그림 4 제주 4.3 이젠 우리의 역사>특별전 리플릿과 동백꽃 기념 뱃지

 


 

 

김도경

(주)인포디렉터스 콘텐츠디렉터도서출판 책틈 편집장
중앙대학교 예술대학원 문화콘텐츠산업 전공
대우증권, SK사회적기업, 서울시 여성가족재단 등 근무
정부, 공공기관 공공문화콘텐츠 프로젝트 기획개발기획&사업관리 다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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