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콘텐츠 큐레이션] 달려라 분홍, "당신의 심장을 뛰게 하라!"
[콘텐츠 큐레이션] 달려라 분홍, "당신의 심장을 뛰게 하라!"
  • 미용회보
  • 승인 2019.01.30 15: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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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실 그리고 애도⑭

 

달리기 우울증에 탁월한 효과

2012년 8월, 당시 구독하던 신문에 게재된 어느 마라톤대회 슬로건입니다. 여성의 유방 건강을 위한 핑크리본 캠페인의 일환으로 매년 진행되고 있는 마라톤대회로 2018년, 18년째 개최되었습니다.

우리나라 굴지의 화장품회사가 후원하고 있는 이 마라톤대회는 ‘핑크 리본’이라는 캠페인에 맞춘 분홍색 상의가 기념품으로 제공됩니다. 제가 힘들어 하던 때 “당신의 심장을 뛰게 하라!”라는 대회 슬로건을 신문광고에서 보고 제 심장이 뛰기 시작했습니다.

그날 오후에 신문을 펼치다 본 그 마라톤대회 광고 문구는 강한 임팩트가 되어 제 심장으로 달려들었습니다.  “그래, 내가 이렇게 무너져가는 제 모습은 누구도 원하지 않을 거야. 살아보자. 움직이자. 심장을 뛰게 해보자”라는 제 안의 목소리를 들으며 그날 저녁, 먼지가 뿌옇게 내려앉은 운동화를 꺼내 신고 무작정 천변으로 나섰습니다.
처음 50m를 달리는데 심장이 터질 것 같았습니다. 이후 10km 출전을 신청하고, 2개월 동안 매일 100m, 500m, 1km씩 달리는 구간을 조금씩 늘려 달리며 근력과 호흡을 키워갔습니다. 처음에는 햇빛과 사람을 피해 어두운 밤에만 달리다가 점차 새벽으로, 주말엔 햇살이 가득한 한낮의 달리기를 시도했습니다. 그때 햇빛이 주는 치유의 에너지를 느꼈습니다. 햇빛 아래서 전신 근육을 움직이며 달릴 수밖에 없는 달리기는 저하된 기분과 우울증에 탁월한 효과가 있다는 것을 체험했습니다.

 

 

분홍색 완주 메달, 새로 힘을 내겠다는 약속의 메달이었습니다.
드디어 2개월 후 대회 당일, 기념품으로 받은 분홍 티셔츠를 입고 동생이 즐겨 쓰던 야구모자를 쓰고 10km 코스를 단 한 번도 멈추지 않고 달려 완주했습니다. 동생이 떠난 일년 후인 10월의 일요일, 햇살을 온 맘 가득 머금고 달리면서 숨이 넘어갈 것 같은 순간엔 다시 모자를 고쳐 쓰고, 그래도 힘들면 ‘누나가 완주해볼게. 너와 함께. 네 심장이 뛸 몫까지 달려볼게. 힘을 줘’라는 주문을 외며 달렸습니다. 동생이 잠든 곳에 가져간 분홍색 완주 메달은 다시 힘을 내어 네 몫까지 살아보겠노라는 약속의 메달이었습니다. 이후 21km, 32km, 40km 대회를 거듭하여 42.195km 풀코스까지 도전을 이어가는 기적을 경험했습니다.

당시, 장거리 달리기는 제 라이프 스타일로서는 혁명이었고 몸의 대전환 같은 사건이었습니다. 수많은 러너와 함께 달리는 속에서도 심장에, 눈에, 몸에 햇빛을 주워 담으며 달렸던 42.195km의 숨 가쁨은 평생 몸에 새겨질 기억입니다.

 

 

지금은 부상으로 달리지 못하지만 언젠가는 다시 달리고 싶습니다.
달리기를 하는 동안에는 몸과 관계, 삶에 대해서 생각할 시간을 가지며 몸으로 밀고 나갔습니다. 숨을 몰아쉬며 함께 해줬던 제 몸에 지금도 깊은 고마움을 느낍니다. 달리기는 신체에 힘을 가해 어딘가로 이동하는 운동입니다. 저는 달리기를 하며 슬픔과 절망에서 걸어 나오는 움직임을 작동시켰던 것 같습니다. 걷고 달리며 생각지도 못했던 제 안에 잠재력을 발견하게 되고, 내디딘 한 걸음 한 걸음이 모여서 엄청난 힘을 만들어 냈습니다. 자신을 발견하기 위해, 그리고 더 많이 생각하고, 질문하기 위해 그 길들을 달리고 또 달렸습니다. 달리기를 처음 시작하며 느꼈던 8월의 여름 햇살, 가을 단풍 사이로 쏟아지는 화사한 가을 햇살. 1월 눈 쌓인 남산 언덕을 달리며 만난 차가운 겨울 햇살 속에서 진정으로 살아있음을 만끽했습니다. 때로는 한적한 달리기 코스에서 만나는 빗겨 난 햇살만으로도 충분히 감사하고 행복했습니다.

마라톤동호회에서 활동하고 풀코스 마라톤대회를 출전할 정도로 달리기를 좋아했지만, 부상과 여러 번의 교통사고 등 크고 작은 사고로 몇 차례의 수술을 받으며 이제는 풀코스를 다시 달리지 못할 것 같습니다. 이전처럼 다시 달리기를 못한다 해서, 즐겨 신던 하이힐을 이제는 신지 못한다 해서 제 삶이 불행하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물체마다 탄성이 다르듯이 사람에 따라 탄성이 다르고, 어떤 불행한 사건이나 역경에 대해 어떻게 의미를 선택하고 부여하느냐에 따라 삶은 다르게 흘러간다고 생각합니다. 그저, 다만 필사적으로 회복해나가고자 할 뿐입니다. 그저 살아갈 뿐입니다.

 

내게 중요한 것은 운이나 팔자가 아니라 선택이다.
“장거리 달리기는 긍정적이고 확고한 태도를 필요로 했다. 부정적인 명령은 통하지 않았다. 하지 말아야 할 일들이 아니라 할 일들로 삶이 채워졌다. 장거리 달리기를 통해 나는 내 몸과 다시 만났다. 그리고 몸에는 그에 걸맞는 마음이 자리한다는 걸 발견했다.

장거리 러너는 신비롭게도 몸과 마음을, 고통과 즐거움을, 의식과 무의식을 서로 화해시킨다. 장거리 러너는 찢어진 곳을 기우고 갈라진 영혼의 상처를 치유한다. 장거리 러너는 놀이에서 시작해 고통을 뚫고 지나가 즐거움 속에서 끝마친다.

내가 누구인지 말할 수 있는 사람은, 내 삶이 어떤 것인지 결정할 수 있는 사람은 바로 나 자신이지 다른 사람이 아니다. 나를 대신해 생각해줄 사람은 없다. 그러고 싶지도 않다. 내게 이기느냐 지느냐의 문제는 이런 것들이다. 내게 중요한 것은 운이나 팔자가 아니라 선택이다. 내가 보는 것, 느끼는 것 등 취향이랄 수 있는 모든 것은 선택의 문제다. 나는 이런 사람을, 이런 가치관을, 이런 우주관을 선택했다.”

 

조지 쉬언 『달리기와 존재하기』 중

 


김도경

도서출판 책틈 편집장
중앙대학교 예술대학원, 문화콘텐츠산업
대우증권, SK사회적기업, 서울시 여성가족재단 등 근무
정부, 공공기관 공공문화콘텐츠 기획개발 및 사업관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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